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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추억&잡설

4월이 되면 추억하게 되는 2002년의 일 '나는 그때 그곳에 있었다'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저도 군대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 이런 질문을 받기 마련입니다. '군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뭐야?' 또는 '군대에 있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뭐야?' 라는 식상한 질문...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이 식상한 질문에 매우 색다른 대답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응... 난 월드컵 개막식... 석달동안 춤만 추었거든...'이라고 무슨말이냐구요?
2002년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던 그날 저는 월드컵 개막식의 첫 순서인 '일무'라는 것을 저런 한복/관복과 같은 옷을 입고 그것도 맨 앞줄에 (기자석?)앞에 있었습니다. 무슨 군인이!! 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나라의 큰 행사에는 알게 모르게 많이들 동원되기 마련이죠...

3달동안 총을 잡던 손으로 무언가를 기리는듯한 손짓을 배워야 했고
3달동안 쿵쿵 땅을 찍으며 걷던 걸음 대신 조근조근 무언가를 알현하는 느낌으로 걸어야 했습니다.
굳은 표정대신 다양한 표정을 표현해주기를 바랬고
그것은 2년 2개월의 군생활이 막바지에 이른 저에게는 고통이었습니다.
차라리 훈련을... 차라리... 연병장을 뛰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였으니까요

고되고... 군대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러 무용교수님들 덕에 많은 후임병들의 개념이 병들어가고(--;; 농남입니다.) 단 하나 군에서의 생활과 비슷한 것이 있다면 줄을 죽도록 맞추어야 한다는 것...

상암 월드컵구장 지하 대기실에서 일회용 카메라로


하지만 군인으로 있으면서 매일같이 함께 출연하는 여러 무용학과 (여)학생들을 마주칠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다려지는 일이었습니다. 간혹 군단장님이나 사단장님이 한마디 하고 지나갈때에는 비를 맞으면서 연습을 하기도 했지만 연습이 끝나면 내무실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사와 저렇게 사진을 찍고 놀 정도로 색다른 일상의 연속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아직 개장도 하지 않은 상암 월드컵 구장을 속속들이 헤집고 다니기도 했고 그때만해도 '질'자체가 다른 그 월드컵용 잔디를 선수들보다 먼저 매일같이 밟고 돌아다니기도 했죠

하지만 4월 초입부터 6월까지 저렇게 몸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꽁꽁싸매고 있다보면 아... 이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빨리좀 끝나라 이놈의 월드컵...' 이 말을 모두들 되뇌였습니다. 빨리좀 끝나라... 빨리좀 지나가라...
눈은 즐거웠지만 몸이 힘들었고 먹을것은 신경써 주었지만 높은 분들도 자주 신경쓰러 오셔서 항상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놈의 월드컵이 시작되는 날이 다가오고... 전날까지 리허설을 마치고 바로 그날 월드컵 경기장 지하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천번 연습했고 수만번 반복했던 동작들 자꾸 각잡혀 나오는 동작때문에 먹어야 했던 욕들 이제는 안녕입니다.

준비하라는 고함이 들리고 경기장은 깜깜해지고 저희는 깜깜한 그 순간 조용히 들어가 짠하고 나타나야 했습니다. 깜깜한 중에 조용히 짠~ 하고 나타났을때 사실은 제 눈앞도 깜깜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환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깜깜함에서 밝아짐이 아니라 눈앞에 수천 수만의 플래쉬가 동시에 터졌습니다. 상상해보지 못한 경험이었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느낌이었죠... 어둠 속에서 갑자기 동시에 터지는 플래쉬... '파바바팍' 멍한 기분으로 멍한 눈으로 겨우 그동안 익힌 동작을 기계적으로 따라하며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 하는지 뭘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멍~한 기분으로.

두번째 공연까지(위 사진의 녹색옷 입고 하는 공연도 있었습니다.) 끝나고 저희는 모두 멍한 기분이었고 허무한 기운이 누구하나 예외없이 짓누르는 기색이었습니다.

하지만... 대기실로 다시 들어오는 순간부터 저희는 '군인'이었어야 했죠... 누구보다 멍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지만 이때는 제가 눈치볼 사람보다 제 눈치를 봐야할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에 더 독하게 욕을하고 더 독하게 다그쳐야 했습니다. 누구보다 더 빠져나오기 힘들었는데도 말이죠...

PS. 시간이 지나서 요즘에는 가끔 저때 같이 참여했던 여러 무용학과 학생들 중 그때 그 학교 무용과 학생이었던 분들을 만나게 될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는 찌푸리며 이야기 했던 많은 것들이 가장 큰 추억과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