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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추억&잡설

양준혁의 통산홈런왕 갱신!! 그러나 난 장종훈을 추억한다.

이글스의 황금기는 언제였을까? 누군가는 첫 우승을 했던 1999년을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글스의 황금기는 바로 김영덕감독이 이끌던 시기의 빙그레 이글스이다. 1990년을 전후로 야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였던 시절 내가 응원하는 팀의 강함을 충분히 느끼게 해줄 만큼... 그러나, 항상 마지막에는 빨간 유니폼을입은 악마
[각주:1]들의 방해에 매년 울분을 품으며 내년을 기약하게 하고, 항상 기대를 품고 지켜볼 수밖에 없던 그때의 팀이다.
고향이 대전인데다 할아버지께서는 그 옛날 일제시대때 실업팀 주전 투수였다고 자랑삼아 말씀하시곤 하면서 늘 TV에서는 야구가 틀어져 있었다. 사실 기억도 나지 않는 한때 OB 베어스의[각주:2]어린이 회원이기도 했지만 기억이 남아있는 순간부터는 항상 빙그레 이글스의 회원[각주:3]이었다. 아무 이유없이 지지하고 좋아하는 것이 팬심이지만 지금까지 유지되는 이 팀의 색깔이 참 마음에 든다는 것이 그 이유라면 이유일 것 같다.


장종훈은 이글스의 색깔이다.

이정훈! 난 아직도 그가 짧은 안타에 이루까지 욕심을 내다 횡사를 하고 형형한 눈빛을 희번뜩대며 씩씩거리던 모습을 잊지못한다.



빙그레, 한화 이글스의 색깔이 무엇일까? 다른것 보다 조금 촌스럽고 세련되지 못하지만 늘 들끓지는 못하지만 한번 폭발하면 무섭게 타오르는 타격과 순박함일 것이다. 투수진으로 근근히 버텨 갈때에도 언론에서는 항상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 칭하고는 했으니까... 그 색깔이 갖추어 지는데에는 장종훈이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 누구도 넘지 못했던 40홈런을 넘겼으니 모두가 열광했고 모두가 스타라 불렀다. 그러나, 내게 그는 단순한 4번타자 그 이상이다.

장종훈은 연습생 출신이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그러나, 야구가 하고 싶어 연봉 600만원의 연습생으로 겨우 입단을 했던 '고졸'출신의 '연습생'이었지만 '딱 3년만 죽을각오로 열심히 뛰어보자'는 자신과의 약속을 죽을힘을 다해 지켜 주전 유격수가 되고 또 4번타자가 되고... 홈런왕이 되었다.

바로 이선수가 홈런하나, 타점한개까지 이제껏 '신기록'으로 만들어 내었던 한국프로야구의 '역사' 한화의 '장종훈'이다.

장종훈은 내 어린시절 꿈이었다.

어렸을때 골목야구가 한창이던 때에 항상 시작부터 소란스럽기 마련이다. 이유는 단 하나 서로 장종훈 역할을 하기 위해서이다. 서로 내가 '장종훈'이라고 빽빽 소리를 지르고 악다구니를 쓰느라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이 골목야구가 시작되었다. 그때에는 나도 비록 골목야구라 하더라도 한번이라도 더 '장종훈'이 되고 싶어했다. 내게있어 장종훈은 한 경기에서 한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압도'를 의미했으니까... 무엇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도 '장종훈'이라는 이름의 선수는 되고 싶었다. 그것은 내또래의 친구들 모두에게 그랬다...

장종훈은 모든 사람의 꿈이었다.

명성있는 사람이라면 또, 돈이 있다면 누구나 학위를 딸수 있는 시대이다. 고졸로 입단한 프로선수들도 많이들이 대학에 적을 두고 있기도 한데 장종훈은 아직도 '고졸'타이틀을 버리지 않고 있다. 누군가가 장종훈에게 물었다. '왜 대학에 안가시나요?' 그 질문에 대한 장종훈의 대답은 '모두들 저에게 고졸신화라 부릅니다... 제가 고졸분들의 희망이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희망을 주기위해 저는 대학을 가지 않았습니다'[각주:4] 경기 중에 자신의 타격에 맞아 부상을 입은 투수를 살피러 나가 아웃이 되기도 하고 사소한 칭찬에 순박한 웃음을 보이던 '촌놈'장종훈은 순박하고 우직한 사람이 써내려간 성공신화에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다.

내게 있어 장종훈은

이제는 앞으로 잊혀져갈 기록의 사나이이지만 내게있어서 홈런은 장종훈 이전의 홈런과 그 이후의 홈런만이 있을 뿐이다. 내게있어 스포츠 경기에서의 단 한명으로 느껴질수 있는 최대치의 '압도'는 장종훈 뿐이며, 내게있어 야구는 누군가의 활약에 따라 '그깟 공놀이'에서 '최고의 스포츠'라 표현하게 될수도 있음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라고들 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기록이 지워지고 누군가의 기록이 앞세워 지는 이때 나는 장종훈만을 기록한다. 그리고 장종훈만을 기억한다. 앞으로 많은 이들이 장종훈 앞자리에 이름을 새기더라도 나는 장종훈만을 추억할 것이다.

짠돌이 구식구단 한화에 감사한 것이 있다면 초라하지 않았던 장종훈의 은퇴식이다.

 

장종훈 (1987.4.14 ~ 2005.9.15)

1949경기 6290타수 1771안타 340홈런 1043득점 1145타점 122도루 997사사구 1353삼진

그는 이제 뒤켠으로 물러서게 되지만 내 기억의 우선순위에는 항상 장종훈이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장종훈이 되고싶었던...

Baseball Kid 흰소를 타고

 
덧> 아마 정민철(=에이스), 송진우(=이글스)가 은퇴 할때에도 아마 이런식의 추억질이 계속 될 것 같다.
이 한사람 한사람 이름 석자들이 내게는 모두 의미가 있으니... 장종훈(=압도, 꿈, 홈런, 4번타자)

 
  1. 해태 타이거즈... 그땐 정말 어린마음에 그들을 악마와 동격으로 보았다 [본문으로]
  2. OB 베어스가 창단은 대전에서 하였으며, 어른들은 OB에 대한 애정을 쉽사리 거두지 못했다. [본문으로]
  3. OB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한 것이 장종훈이라면 심한 비약일까? [본문으로]
  4. 온전한 기억이지는 않지만 대략 저런 요지의 질문과 대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본문으로]